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은 10월 31일(금) 12:00 프레스센터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사단법인 4월회 초청 오찬 강연회를 하면서 4.19에 대한 자신의 참회의 고백을 하였다. 그 주요내용에 대해 황천모 부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ㅇ 박희태 대표최고위원 강연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존경하는 4월회 이수광 회장과 회원 앞에서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저런 말을 하려고 왔는가’ 하실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말이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고 싶었던 얘기이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서 하지 못했다. 4.19에 대한 나의 고백을 겸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제가 4.19당시에 대학교 4학년이었다. 60년 그해 4월 달부터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봄방학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시골에서 법대 4학년이어서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심신산골에서 전기불도 없고 전화도 없는 그런데서 박혀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는데 투표를 하라고 해서 동네까지 나갔다. 가서 보니까 3인조, 5인조로 국민들을 동원해서 표를 찍도록 조장이 감시하고 이런 형태로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국회의원이 나타났다. 투표현장을 시찰하고 갔는데 제가 순간적으로 울분이 나고 부정과 불의가 자행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내가 이 일을 저지르면 홀로 나를 키워 오신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상심하고 내 앞길도 이것으로 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덮이는 바람에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그 국회의원이 내 앞을 지나쳐 가버렸다. 그래서 다시 제가 공부하는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이렇게 무능하고 용기도 없고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는 그런 사람인가 하면서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뒤에 들어보니까 3.15선거 때 마산이니까 제 지역과 가까운데 고등학생들이 부정선거에 항의해서 가두시위를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동네사람들한테 귓전으로 들었다. 그러나 제가 행동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으로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4월이 되면서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전부 다 거리로 나와서 부정을 규탄하고 현 정권을 물러가라고 하는 정치적인 구호로 발전하였다. 학교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시골에서 그러다 말겠지 하면서 육법전서와 씨름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4.19혁명이 터졌고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과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많은 생명까지 바치는 일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귀로 전해 듣고 다시 큰 동네를 찾아가서 신문을 보고 알았다. 이 중요한 민주투쟁의 과정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내가 결국 아무것도 안하는 젊은 학생으로서 이 시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내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에 갔더니 학교문은 닫혀있고 이미 혁명은 끝나서 학생들이 이제는 거리지배자가 되고 정권마저도 이제는 향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정리된 상태였다. 이승만 대통령도 하야를 하고 목표를 잃은 저는 정말 할일이 없었다. 그저 도서관에 가서 하던 공부만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여름이 가까이 되었을 때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이 좀 창피한 줄 알아라, 빨리 고향으로 가서 민주 계몽운동을 하자, 이럴 때 학생들이 일어서지 않으면 언제 되겠는가 하고 제게 강력하게 귀향활동을 하자고 하였다. 저는 그때 그렇지 않아도 제 마음에 엄청난 부담과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심정으로 학생들과 고향에 갔다. ‘4.19혁명주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각 마을을 다니면서 계몽을 하였다. 때로는 등잔불 아래서 주민들에게 설득도 하고 자유를 찾았노라. 이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다녔다. 한 달 동안 그러고 다니는데 고시 시험이 있다고 해서 준비도 안한 상태에서 응시를 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을 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4.19를 생각할 때마다 또 4.19기념일이 올 때마다 내 자신에 대한 엄청난 회한과 모멸감이 떠나지 않았다. 요즘도 4.19기념일에는 수유리도 가서 참배를 하지만 참배할 때마다 남다른 죄책감에 젖어서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토로해야만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4월회 회장님께서 오셔서 ‘I confess(나는 고백한다)’에 대해 좀 얘기를 하라고 해서 왔다. 4.19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런 우유부단하고 소신도 없고 자기만을 위하고 살아온 학생도 4.19 세대중에 있었고 그와 반대로 거리를 뛰쳐나가 민주화를 부르짖고 조국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간 그런 4.19세대도 있었다. 극명하게 갈라지는 운명 속에서 요즘도 참으로 무기력했던 못난 시대를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는 4.19 정신을 내 생애에서 구현하고 그 실천을 위해서 남모르는 행동을 하고 우리의 같은 세대, 내 친구, 내 후배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여태 지내왔다. 혁명과 쿠데타도 있었지만 어떤 것에도 저는 동조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해서는 법학도로서 거부감을 가져왔다. 그런데 4.19혁명만은 정권을 탐한 혁명이 아니다. 그만치 순수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감동을 하고 있다. 그 이후에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있었지만 모두 정권을 탐하는 그런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4.19정신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정의가 넘치는 이런 나라, 이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신으로 지금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특히 4.19 정신은 우리 헌법 전문에도 있고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지금도 흐르고 있다. 우리가 현행헌법에 더 충실하고 우리 4.19 세대들이 부르짖던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적 정의, 이것이 오늘날도 다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4.19혁명을 지지하고 계승하는 것이 4월회 정신에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까 저보고 4월회에 가입하라고 했는데 제가 왜 가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따 들어보라고 했다. 저는 자격이 없다. 4.19혁명의 참여자가 아니고 방관자였고 비겁한 사람이었다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기 때문에 제 참회의 길을 좀 더 걸어야 여러분들과 같이 4월회에 들어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라의 경제가 어렵고 특히 금융위기로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럴 때도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는 4.19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합심해서 이 위기를 다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4월회 여러분께서 각계각층의 존경받는 원로가 되어 있지만 영원한 청년의 역할을 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여러분이 거리에서 부르짖던 그 함성은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다. 여러분들께서 부디 우리 차세대들을 잘 길러주시고 우리 자랑스러운 4.19 정신, 민족사의 거룩한 한 페이지가 계속 빛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역할을 우리 이수광 회장님과 여러 회원님께서 해주시리라고 확신한다. 오늘의 정치를 담당하는 한사람으로서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지만 겨울이 길면 봄이 곧 올 것임을 알 수 있다. 긴 고통의 겨울을 지나 이제 즐거운 세상이 돌아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ㅇ 이어서 박 대표께서는 당?정협의회와 여?야협조에 대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헌법은 순수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제가 혼합되어 있다. 우리 정당들이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은 내각제 요소 때문이다. 미국의 정당은 평시에는 역할이 별로 없지만 한국의 정당은 정책과 법안을 입안하고 정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당정협조는 전환기에 처해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면서 인사권 등 모든 것을 움직였다. 이제는 당헌이 바뀌어져 당과 대통령 관계가 새롭게 변하고 있다. 당헌에 대통령은 당의 정강정책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충실히 뒷받침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을 잘 풀어나가는 것이 당정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정기적인 회동을 갖고 있고 정부와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야당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수레바퀴의 하나이다. 우리가 다수당이지만 일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타협의 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저의 신조는 ‘정치는 타협이다’는 것이다. 타협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치기술이다.”라고 말씀하였다. 또한 대표께서는 “지금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있는데 특히 지난달 우리 국민들이 여행을 많이 삼가 해주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이 현명하고 나라를 위하는 자세 덕분에 국제수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였다.
ㅇ 박희태 대표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4월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ㅇ 금일 강연회에는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하여 이경재 의원, 이수광 4월회 회장과 회원 등이 참석하였다.
2008. 10. 31
한 나 라 당 대 변 인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