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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홍준표 대통령 후보, 충남 서산 거점유세 주요내용[보도자료]
작성일 2017-04-27

  홍준표 대통령 후보는 2017년 4월 27일(목) 17:20, 충남 서산 신읍내약국 앞에서 거점유세를 했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서산·태안 시민 여러분, 홍준표다. 서산만 오면 생각나는 것이 옛날에 이런 노래 있었다, ‘서산 갯마을’이라는 노래, 조미미가 부른 노래다. ‘굴을따랴 전복을따랴 서산갯마을 처녀들 부푼가슴 꿈도많은데 요놈의 풍랑은 왜이다지 사나운가’ 이게 조미미 노래다. 여기 저희들이 검사를 할 때 가장 지청을 하고 싶은 곳이 서산지청장이었다. 저는 그 당시에 아주 밑바닥 검사를 해서 지청장도 못 가보고 끝났다. 서산지청장이 왜 그때 가장 인기 있는가. 전국에서 서산이 가장 부자동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산지청에 가면 그렇게 대접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산구민들이 워낙 인심이 좋아가지고 검사들이 서로 서산지청에 한 번 가보려고 본청가면 지청가고 그랬다. 그래서 제가 옛날에는 노래를 참 잘했다. 특히 조미미의 서산 갯마을은 고등학교 때 시골에서 노래자랑 할 때 그 노래가 제일 많이 나왔다.

 

  오늘 서산에 왔는데 요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 선거를 갑자기 하다보니까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가지고 국민들이 선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여론조사 기관들이 자기 맘대로 하고, 또 일부 언론들이 편향되게 보도를 하다 오늘 아침부터 조금 달라졌다. 밑바닥에서 홍준표가 치고 올라오니까 언론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제가 포스터를 보시면 서민대통령이라고 해 놨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서민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제 포스터를 보시면 서민대통령이라고 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서민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왜 서민대통령을 한 번 해보겠다고 말을 했느냐 하면, 제가 경상남도 창녕 출신이다. 7살까지 고향에서 살다가 저희 아버님이 망해서 리어카에 짐을 싣고 8살 되기 직전에 이틀을 걸어서 전 가족이 리어카를 밀면서 걸어서 모래시계 드라마를 보면 나온다. 걸어서 대구로 이사를 갔다. 대구 신천동에서 저희 아버님이 막노동을 했다. 막노동을 하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는데 신천동에서 1년 살다가 그때 고향 떠날 때 집을 한 번 떠나보고 그 뒤에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집이라고는 우리 집이 없었다. 늘 달세방을 돌아다녔는데 신천동에서 1년 살다가 그 다음에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신암동에 가서 1년 살다가 그 다음에 대구에서 2년 살아보니 도저히 도시에서 막노동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그때가 제가 기억하기로는 5.16 직후다. 그래서 다시 리어카를 끌고 짐을 싣고 이틀을 걸어서 창녕읍으로 내려갔다. 고향은 창녕 남지인데 고향으로는 창피해서 못 들어가고 창녕읍으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또 1년 살다가 안 되어서 합천 산골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6학년 다니면서 저는 다섯 번 전학을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친구가 없다. 1년 마다 옮기고 옮긴 것이다. 합천에서 하천부지라고 있다. 강바닥에 소유권이 없다. 자기 땅이 아니고 국가 소유인데 하천부지 600평 빌려서 보리쌀을 심고 그것 하는 것이 1년 농사 전부였다. 그 당시에는 여기 어르신들 아시겠지만 ‘장리곡’이라는 것이 있었다. 시골에서 장리(長利)를 얻어서 봄에 보리쌀 한 말을 얻거나 쌀 한 말을 얻으면 가을에 한 말 반을 줘야 한다. 한 가마니를 얻으면 한 가마니 반을 주는 것을 옛날 시골에서 장리라고 했다. 그래서 보릿고개가 있을 때 먹고 살기 힘들 때에 봄에 춘분기에 장리곡을 얻어서 그것을 먹고 가을되면 한 가마니 반을 갚아줘야 한다. 그런 생활을 쭉 하다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제가 공부는 좀 잘했다. 공부는 잘 한 것이, 하도 굶고 어렵게 살다보니 “내가 공부라도 잘해야겠다.” 했다. 공부를 그 당시에 생존 수단으로 했다. 내가 살기위해서 내가 공부라도 최고로 잘해봐야겠다 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도 장학생으로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육군사관학교를 가려고, 우리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이 없다고 육사를 가라하셨다. 그래서 제가 육군사관학교를 시험 쳐서 특채 합격을 했다. 그런데 제가 문과가 아니라 이과다. 원래 저는 하도 집안이 못살고 어렵고 굶어서 의사를 한번 해보려고 의사를 하면 그 당시에 돈도 잘 벌고 존경도 받고 해서 꼭 의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를 가서 의사를 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대학등록금이 없다고 하셔서 그래서 육군사관학교를 가라고 해서 시험 쳐서 특채가 되었다. 그 이듬해 72년 1월 12일에 신체검사만 하면 되는데 그 전에 12월 23일에 저희 아버지가 장물을 취득했다고 말하자면 조합에서 나눠준 비료 두 포대를 장물을 샀다고 해서 그날 분명히 같이 비료를 탄 사람이 있는데, 시골에는 옛날에 조합장이 굉장히 힘이 있었다.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파출소에 가셨다. 그 당시에 동네 파출소 무서웠다. 파출소에 가셨는데 제가 파출소 가서 이틀을 사정을 해도 그 경찰들이 전혀 눈도 깜짝 안하고 윽박질렀다. 그래서 이틀간 사정을 해서 아버지가 누명을 벗지 못하고 잘못했다고 각서를 쓰고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경찰을 잡으려면 무엇이 되어야 하나 알아보니 검사를 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이튿날부터 새로 문과공부를 시작해서 고려대 법과대학을 장난삼아 쳤는데 되어버렸다. 그래서 저 혼자 서울로 고학을 올라갔다. 아버지께서 7만원 빚을 얻어서 그 당시 5만 6천원이 등록금이었다. 7만원 빚을 얻어 주시기에 5만 6천원 등록금을 내고, 1만 4천원을 가지고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1만 2천원 하숙비를 주고 2천원을 가지고 서울생활을 시작해서 저 혼자 고학을 하고 있었는데 74년도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합천에 우리 집이 뒷집 사람이 자기 집에 불을 질렀는데 그 사람 집은 안타고 우리 집이 바로 불나서 타버렸다. 오두막살이도 다 타버려서 합천에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74년도 6월말에 전 재산을 정리해보니까 32만원이 나왔다. 32만원을 들고 울산을 갔다. 울산에 가서 저희 아버지는 울산 현대조선소에 철조망 쳐서 배를 지을 때인데 거기서 야간에 배를 짓다 남은 철근, 철근조각을 백사장에서 지키는 경비원을 했다. 그 경비원이 그 당시에 제 기억으로는 일당이 800원이었다. 그 때 겨울이 그렇게 추웠다. 영하 28도 정도 되었다. 그 백사장에 회사에서 천막하나 안 가리고 조그마한 의자 하나 주고 밤새도록 철근을 지키라고 했다. 그것을 하며 추우니 회사에서 막소주를 줬다. 그 당시 막소주는 댓병이었다. 하루저녁에 댓병 한 병씩 막소주를 줬다고 한다. 경비하던 두 사람이 서로 앉아서 막소주를 마시면서 밤새도록 경비를 한 것이다. 그래서 10개월 정도 하다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 보니 병명도 제대로 모르고 병원도 제대로 못 가셨다. 그 때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제 어머니는 까막눈이다. 문맹이다. 아버지는 무학이시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제가 고등학생 때 대구에서 자취를 할 때 시골서 올라와서 서문시장 좌판에서 나물을 팔고 가시고 하실 때 팔고 돈 몇 푼 생기면 학비라고 주고 가시곤 하셨는데 그것 하시며 혹시 밖에 나가 길을 못 찾으실까 싶어서 손바닥에 꼭 버스 번호를 적어드렸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길 했다. 제가 그렇게 살아도 바르게 살았고, 세상 비꼬이게 보지 않았고 정직하게 살았다. 5월 9일에 경비원의 아들도 대통령을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까막눈의 어머니를 둔 저도, 저는 이제 60살이 넘었다. 아버지가 41세, 어머니가 39세이실 때 아들 하나 보려고 하다가 그 때 저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4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2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 참 가슴이 아팠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서 특히 저희 어머니 같은 경우에 까막눈이고 아는 것이 없으니 밖에만 나가면 당하고 오신다. 당해도 불평 한마디 안하고, 대들지도 않고 그냥 참고 살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도 그저 굽실굽실하며 사셨다. 그래서 제가 정치를 하거나 학생일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란에 늘 제 어머니 이름을 적는다. 제가 그렇게 어머니 이름을 적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통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김구 선생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홍준표가 어릴 때부터 나이 60세 넘어서 까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고 제 인생의 멘토는 제 어머니다. 제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제 어머니 같은 사람이 핍박 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한번 만들어보기 위해서 제가 서민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70%에 달하는 그런 서민들의 마음을 알고,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 서민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아볼까,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볼까하는 것이 홍준표의 꿈이고 제가 대통령이 되려는 목적이다. 요즘 젊은이들 걸핏하면 부모 탓을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걸핏하면 신세한탄을 한다. 일이 안되어도 부모 탓을 하고,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우리 집은 왜 돈이 없는지 하는 탓을 한다. 저는 부모로부터 받은 돈이 단돈 1원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바르게 살라 는 것이다.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면 복이 온다는 것이다. 합천에서 불이 났을 때 저희 아버님이 그러셨다. ‘야, 집에 불이 나면 집안이 불꽃같이 인다고 하더라’ 그래서 집이 없어져 버렸다. 오두막이 없어져 버리고 6월 30일에 장마가 져서 비닐을 치고 사는데 불 탄 집 마당에 짚을 깔고 비닐을 깔고 위에 비닐하우스를 얼기설기 지어서 그렇게 살면서 서울에서 고학을 하다가 집에서 연락이 와서 놀라서 내려가 보니 걱정할까 싶어서 한 보름동안 연락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연히 옛날에는 시골에 전화를 하면 우체국으로 전화를 한다. 그래서 전화가 없을 때 곧 전화를 할테니 우체국에 대기를 하고 있으라고 전화를 하면 한 20~30분 있다가 전화를 하면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하도 꿈이 뒤숭숭해서 집에 전화를 해보니 집에 불이 났다고 한다. 어떻게 하다가 불이 났냐고 하니 뒷집에서 자기 집에 불을 질렀는데 그것이 그 집은 안타고 바람타고 우리 집만 다 타버렸다고 한다. 내려가니 우리 아버지가 그러신다. ‘야, 집에 불이 나면 집안이 앞으로 잘 일어난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뒤로부터 10년 동안 우리는 피눈물을 흘렸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도 힘들게 한 10년을 살았다. 우리 어머니에게 그랬다. ‘아버지 순전히 거짓말 하고 돌아가셨다. 집안이 일어나기는 커녕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제가 시험이 계속 떨어졌다. 고시를 보면 떨어졌다. 시험에 수석하겠다고 덤벼들 때는 꼭 떨어졌다. 마지막에 군대 다녀오고 이번에 안 되면 한강에 뛰어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치며 끄트머리라도 붙여달라고 하니 되었다. 그때 시험되고 나서 제일 처음 생각 난 것이 이제는 안 굶어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변호사라도 할 수 있으니 이제 내 가족을 굶겨 죽이지는 않겠다. 나는 이제 지금부터 밥벌이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가 서민대통령이 한번 되어보려고 한다.

 

  두 번째가 지금 이 나라의 안보위기다. 지금 언론에는 나오지 않는데 외신을 보면 러시아 군들이 블라디보스톡에서 국경근처로 대규모 내려오고 있다. 중국 군대가 북한군과 접경근처로 10만명이 집결했다. 중국의 이지스함대가 서해안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의 수호이 전투기가 훈련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에는 칼빈슨호와 일본 함대 두 대가 군사훈련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보리 이사회 전부 회원국들 모아놓고 북의 핵실태를 설명하고 선제타격을 해서 핵을 다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제는 상원의원 100명을 백악관에 초청해서 북의 실태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70년 만에 한반도에 군사충돌의 위기가 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것을 단신처리하거나 크게 다루지 않는다. 아마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좌파들이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겠는가. 친북정권이 등장하면 이 나라 제대로 흘러갈 수 있겠는가. DJ, 노무현 정권 10년 간 북에 퍼준 것이 70억 달러가 넘는다. 8조 4천억 원정도 된다. 그 10년간 넘어 간 것이 전부 핵개발 자금이 되어 북핵기술 최고조에 와있다. 그러면 그런 정부를 다시 5월 9일에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탄핵여파로 좌파로 지금 나라 전체가 흘러가고 있다. 친북정권 수립하게 되면 미국 트럼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북을 때리면 북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오산 비행장, 평택에 미사일 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국의 칼빈슨호를 수장시키겠다고 한다. 이제 얼마나 엄중한 안보위기가 왔는데 대한민국 언론들은 조용히 있다. 그것이 좌파에게 대선 가는 것, 지금 제가 보건대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안보위기가 오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좌파를 뽑겠는가. 나는 안 뽑는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제가 sns에 쓰고 이렇게 유세 다니며 얘기해도 그 기사는 다 빠진다. 제가 아는 안보위기 기사는 다 빼고 현장에 기자들이 열심히 써 올려도 데스크에서 다 빼버린다. 그렇지만 이제 진실은 숨길 수가 없을 것으로 본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의 김정은에 물어보고 대북정책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저는 그런 얘길 한다. 문재인 후보 대통령되면 대북정책에 관한한 이 나라의 대통령은 김정은이다. 그리고 3번 안철수 후보 자세히 보시면 그 포스터가 합성사진이다. 제가 물어봤다. 왜 합성사진을 썼냐고 하니 디자이너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팔 들고 있는 것이 합성사진이라고 한다. 그러면 목은 안철수 후보가 맞는데 몸통은 박지원 대표냐고 했다. 3번이 제가 볼 땐 더 무섭다. 박지원 이라는 분 어떤 분인가. 대북 송금 4억 5천만 달러 해주고 징역 다녀왔다. 가장 친북적이다. 최근에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 되면 자신은 초대 평양대사 간다고 했다. 그것이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고 고려연방제와 연결해서 봐야 한다.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대남전술전략으로 주장하는 것이 고려연방제다. 고려연방제를 해야 우리나라 대사가 평양대사가 생기는 것이다. 그것을 물어보니 안철수 후보는 농담한 것이라고 한다. 박지원 대표가 자기는 안철수 후보 대통령되면 임명직 안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되면 자기는 상왕이다. 상왕은 임명직 아니다. 박지원 대표가 상왕이다. 북한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보위기가 왔기 때문에 이 나라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안보 대통령은 강단과 결기가 있어야 한다. 배짱과 뱃심이 두둑해야 한다.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 중 배짱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군가. 강단과 결기가 있는 사람 누군가. 홍준표가 대통령되면 북한의 김정은 쯤은 내가 무릎을 꿇린다. 역대 대통령들이 북에 눈치보고 달러 상납하고 바치고 그런 일 나는 절대 안 한다. 절대 안 하고 이제는 깡패에게 월정금 바치듯이 매달 꼬박꼬박 월정금 바치듯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뼈 빠지게 벌어서 북에 퍼주는 짓 절대 안 한다. 전술핵을 들여오겠다.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와서 남북한의 핵균형을 이루게 되면 북한이 절대 핵공갈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서 힘의 우위에 서야만 북한으로부터 더 이상 협박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홍준표가 집권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핵에 겁먹지 않고 북의 위협에 동요되지 않고 북을 제압하고 북한정권을 제압하고 더 이상 우리나라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일 없도록 제가 대통령이 되면 튼튼한 안보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

 

  저는 정말 서산태안 국민여러분에게 약속드리고 가겠다. 경비원의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저는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또 까막눈의 엄마를 가진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달 5월 1일부터는 가정의 달이다. 이제 대한민국 가정에 젊은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더라도 부모 탓 하지 말고 진짜 나를 낳아준 그 은혜만으로 우리 부모들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옛날처럼 우리나라가 가정이 화목하고 그렇게 해서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거듭났으면 한다. 요즘 TV에서 보고, 또 사회가 혼란스럽게 된 것을 보고, 그런 것을 보고 ‘하늘의 뜻에 맞는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사회가 얼마나 흉흉해졌나. 흉악범이 얼마나 날뛰고 있다. 홍준표가 집권하면 흉악범의 사형 집행을 반드시 하겠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부녀자들이 밤에도 길거리를 마음대로 오고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치안이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보겠다. 지금 교도소에 있는 흉악범, 사형대기자들이 제가 볼 땐 70명이 넘는다. 그것을 안 하니까 유영철, 강호석 같은 이들이 길거리에 부녀자들이 못 다니는 흉악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흉악범은 사형집행을 하겠다. 97년도 YS가 하고 20년 동안 사형집행을 안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워낙 흉악범이 많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반드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금년에 사형집행 해 버리겠다. 그래서 대한민국 치안이 안전한 나라로 만들겠다. 인권, 인권하는데 그러면 죽은 사람 인권은 생각 안하는가.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살인하고 그렇게 못된 인간 이하의 짓을 해 놓은 사람의 인권만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나라인가. 대부분 미국 주에서도 아직 사형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얼치기 인권주의자들이 그런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설친다. 홍준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 범죄피해자 가족들의 평생의 가슴의 한을 품고 산다. 그래서 안전한 사회를 꼭 만들겠다. 마지막으로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한 1천만명에 달하는 서민 생계형 전과자들을 깨끗이 말소하겠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게 사업하다 신용불량자가 되신 분들이 참 많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그 다음부터 대출이 안 된다. 은행 대출이 안 되고, 신불자를 모두 신용 사면토록 하겠다. 그리고 담뱃값도 내리겠다. 저는 5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서민들이 속이 타니까 담배를 못 끊고 핀다. 또 청년들이 취직도 안 되고 속에 열이 나니 담배를 핀다. 담뱃값 옛날처럼 내리겠다. 그리고 유류세, 우리나라 유류세라는 것이 기름세다. 산유국의 유가가 떨어져도 우리나라 기름값은 안 떨어진다. 기름값의 절반은 세금이기 때문이다. 유류세도 서민들이 사용하는 2000cc 미만 자동차에 한해 유류세도 반값으로 뚝 떨어뜨려 서민들이 유류대금, 휘발유 대금 적게 들도록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언론에서 전부 세금 다 깎고 어떻게 나라 운영하려고 하냐고 한다. 제가 경남도지사 할 때 땅 한 평 안 팔고 3년 6개월 동안 재정개혁, 행정개혁만으로 빚을 1조 4천억 원을 싹 다 갚았다. 경상남도만이 유일하게 지방자치단체 선거 이래, 20년 만에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가 빚이 하나도 없는 단체가 경상남도 밖에 없다. 그런데 빚 갚을 때 세금을 더 걷어 갚은 것이 아니고 내부개혁과 재정, 행정 개혁을 한 것이다. 또 산하 공사를 통폐합하고 구조조정을 했다. 일도 안하고 놀면서 도민 세금만 축내는 것 다 정리했다. 진주의료원도 강성귀족노조를 놀이터가 되어서 폐업시켰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3년간 붙어서 싸워 이겼다. 또 무상급식 가지고 전교조와 1년을 싸워 이겼다. 그래서 홍준표가 되면 우리나라의 종북세력, 강성귀족노조, 전교조를 반드시 손본다.

 

  존경하는 서산태안주민 여러분, 제가 이제 당진 쪽으로 가야 한다. 꼭 한마디 하고 가겠다. 참 어렵게, 어렵게 살아왔다. 검사 때도 말이 검사지 저는 따돌림 당하고 위에 부당한 지시 안 듣는다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정치할 때도 이회창 총재가 황제처럼 할 때 나는 이회창 계보도 아니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랑 서로 형님동생 하면서도 이명박 계보 아니고, 난 박근혜 계보도 아니다. 홍준표는 독고다이로 60년을 살았다. 제가 생각이 다르다면 끼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홍준표 자존심이 있는데 어느 계파에 들어가는 것 안했다. 그런데 60년 만에 독고다이에게 자유한국당이라는 세력이 붙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독고다이에게 세력이 붙으면 나는 대통령 무조건 자신 있다. 이 선거 구도가 좌파 셋에 1, 3, 5번 우파 하나가 붙었다. 3대 1 선거구도에 좌파가 셋이 나왔고 보수우파가 한사람 나왔다. 이 선거는 끝까지 가면 무조건 내가 이기게 되어 있다. 좌파는 표가 셋으로 갈라진다. 특히 호남지역 표를 두고 옛날에는 호남지역에서 92%가 한 사람에게 몰려 갔는데 지금 안철수, 문재인 나와서 반반 갈라 먹는다. 수도권의 호남도 그렇고, 충남의 호남도 그렇다. 호남 표를 반반 갈라 먹기 때문에 우파들이 뭉치면 무조건 이기는 선거다. 그래서 제가 우리당에 주축 세력들이 전부 충청도다. 당 대표도, 정우택, 정책위의장도 충청도이고, 우리당에 움직이는 세력들이 다 충청도다. 영-충 정권을 만들어보자, 경남과 충청이 연합해서 새로운 정권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했다. 선거는 그렇다. 우리 편이 투표장에 가야 한다. 이제 홍준표가, 경비원 아들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저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5월 9일 경비원 아들, 까막눈 엄마를 둔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 대한민국인가. 금수저 물고 부잣집 아들, 재산이 1천억 원이 넘는 사람 그런 사람만 대통령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5월 9일 가족 모두 투표장으로 가셔서 홍준표에게 투표해 주시면 제가 보은을 하겠다. 고맙다.

 


2017. 4. 27.
자유한국당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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