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식
  • 보도자료·논평
  • 대변인

대변인

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홍준표 대통령 후보, 전북 전주 거점유세 주요내용[보도자료]
작성일 2017-05-01

  홍준표 대통령 후보는 2017. 5. 1(월) 14: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 맞은편 광장에서 전북 전주 거점유세를 했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라북도 도민여러분, 홍준표가 전라북도 도민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을 것이다. 제가 81년 4월부터 82년 6월까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서 1년 4개월을 도민으로 살았다. 그때 제가 부안군 3대대에서 방위소집을 했다. 사법시험 계속 떨어지고 방위소집은 받았는데 고향가려니 창피해서 처가동네에서 1년 4개월을 살았다. 그때 5.18직후라서 경상도 방위는 저 혼자라 부대에서 매일 맞았다. 1년 4개월 동안 엄청 맞았다. 그래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고 살았다. 제가 오늘 여기 와서 드릴 말씀은 딴 이야기안하고 내 마누라 만난 이야기만 시작하겠다. 제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다닐 때 제 각시가 전북 군산여상을 나와서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 창구보는 행원이었는데 돈 찾으러 갔다가 눈이 맞아서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해서 대학 졸업할 때 우리 장인어른 인사 드리러 가자 해서 인사드리러 왔었는데 부안으로 인사하러 왔는데 장인어른이 가만히 보더니 ‘아버지는 계시냐’ 해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계시냐’ 해서 살아계신다. ‘집은 어디인가’ 해서 지금은 울산으로 이사갔다. ‘어머니는 머하시냐’ 해서 달셋방 산다고 했다. 우리가 못살았다. 장인어른이 ‘군대는 갔다 왔는가’ 해서 가야 된다고 했다. 듣더니 30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 집사람이 자기 아버지랑 이야기를 30분 한 뒤에서 나와서 다방에 앉아서 아버지가 머라고 하셨는지 물어봤다. 아버지가 ‘구름 잡는 사람이다.’, ‘택도 아닌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고시되면 손에 장울 지진다.’고 했다. 어머니는 머라고 하더냐고 물으니 참 착한사람 같다고 잘 잡으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 말이 맞는가, 어머니 말이 맞는가 물으니까 ‘내 나이 21살인데 나도 어른인데 내 맘대로 한다.’, 네가 내가 좋냐 하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고시 되는데 4년 더 걸렸다. 4년 있다가 합격하고 우리 장인어른에게 고시가 합격 하는 날 전화했다. 그때는 사법시험은 2차 되면 그때는 면접만 보면 된다. 2차 결과는 신문에 안 나온다. 3차 되어야 나오니까, 홍서방 고시 됐다고 전화하니까 장인어른 첫마디가 자기 손에 장지진다고 했으니 신문에 안 나왔다고 하고 전화 끊었다고 한다. 3차 끝나고 10월 말에 인사하러가서 내가 딸 데리고 간다. 고생 안 시킨다. 장인어른은 우리 집에 올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집에 못 오게 했다. 장모님만 오라고 했다. 장인어른 26년간 못 오게 했다. 절대 못 오게 했다. 장모님만 모시고, 용돈도 돈 있으면 장모님만 줬다. 26년 간 그렇게 했다. 왜 그렇게 했냐.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대학 2학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41살 때, 제 엄마가 39살 때 아들 하나 보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저를 낳았다. 참 귀하게 컸는데, 우리집이 쫄딱 망해서 돈이 없으니 아버지가 막노동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조선소 경비원 하다가 그 당시 74년도 현대조선소 경비원 일당 800원이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어머니가 20년 더 살다가 제가 국회의원되고 14일만에 돌아가셨다. 처음 각시 데리고 올려고 하니까 눈에 안찬다. 그래도 나는 없는 살림에 빚을 내서 내 아들 대학 보내고 했는데, 군산여상 졸업하고 전라도 처녀 데리고 온다니 눈에 안차고 싫다고 했다. 한동안 고생하다가 결혼한 뒤에 우리 장인어른 용서해달라고 했다. 절대 용서 안한다고했다. 내 아들을 그렇게 귀하게 키웠는데 감히 내아들을 깔봐하면서 용서 안한다고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용서를 안했다. 그래서 장인어른에게 이런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가 용서를 안하고 돌아가셔서 나도 용서 못한다고 했다. 결국 장모님 임종도 제가 했고, 아들 셋이 있어도 임종도 내가 지켰고, 장인어른은 마지막에 서울대학병원에 옮겨서 6개월 모시다가 돌아가셨다. 장인어른 임종도 제가 지켰다. 그래서 내가 관계를 푼 일이 있다.

 

  제가 전라북도 와서 드리는 말씀은 제가 그래도 부안군에 사위이기 때문에 제가 원내대표, 당대표 할 때 김종규 군수, 앞에 군수 올 때는 부안군 예산은 책임지고 정부예산 지원했다. 전라북도는 못해줘도 부안군 예산만큼은 채석강도 있고, 내소사 있고, 1년4개월 부안에서 살면서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부안군 예산은 내가 철저히 챙겨줬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전북 온 것은 그래도 대선후보 나온 사람 보시라 전북도민 한 사람이 있는가. 내가 1년 4개월동안 전라북도 도민을 했고, 전라북도 사위고, 지금 송하진 도지사와는 대학동기동창이다. 그래서 오늘 전북도의회 가서 기자회견하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하진 도지사는 투표소 들어가면 나 찍는다. 아마 자기 입장 곤란하지만 비밀투표니깐 송하진 지사는 나 찍을 것이다. 입장 곤란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전라북도에 살았던 때가 40년이 넘었지 않나. 다른 것보다 하나만 전북도민에게 약속하고 간다.

 

  새만금이다. 새만금을 물막이 공사를 다 해놨지만 저것 그대로 두면 50년이 되어도 개발이 안된다. 국가예산 투입을 그쪽에만 집중적으로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단지 조건이 하나 있다. 추진해주려면 전라북도에서 홍준표가 20%이상 나와야 된다. 새만금을 어떻게 하느냐. 지금 이 상태로 두면 새만금은 50년 있어도 개발 안된다. 그래서 새만금을 중국의 홍콩식으로 개발해보겠다. 어떻게 하냐면 중국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고 난 뒤에 1국 2체제 형식으로 운영했다. 홍콩의 자본주의를 손 데지 않았다. 중국 법률이 적용이 안되었다. 그렇게 해서 홍콩은 홍콩대로 발전시키고 중국 본토는 중국 본토대로 발전시켰다. 말하자면 새만금을 특별법을 만들어 기업특별시로 지정해보겠다. 그렇게 만들어서 새만금에 우리 산업부 장관하던 우리당 의원이 낸 안이다. 윤상직 산업부장관이 새만금을 어떻게 하느냐 해서 내놓은 안은 기업특별시로 만들어서 모든 규제를 싹 없애고 환경, 경찰만 우리가 들어가고 나머지는 1국 2체제 형식으로 개발하자고 했다. 그렇게 개발을 시작하면 우리나라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수백조원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끌어내 새만금에 투자시키자. 정부는 soc만 설치해주고 나머지 안은 수백조원에 달하는 재벌돈을 들이자. 매립공사하고 땅을 가지고 가라고 하면 규제 없이 한국 4차산업 시작해서 첨단산업 기지로 만들고 전라북도 인구가 180만으로 안다. 200만 기업특별시로 만들어 보자. 전국에 모든 첨단사업들은 새만금으로 몰아보자는 것이 윤상직 산업부장관이 낸 안이다. 우리당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그 안을 한달 전쯤에 듣고 오늘 전북도청가서 발표를 했다. 그렇게 되면 새만금이 200만 기업특별시로 만들고 대한민국의 모든 첨단산업은 규제가 없으니 그쪽으로 온다는 것이다. 도청기자실에 가서 20% 넘겨주면 하겠다. 그런데 20% 안 넘으면 여기만 특별히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알아서 하시라. 그러면 전라북도 청년들은 서울안가고 새만금 가면 일자리가 천지다. 100만개 일자리 나올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은 이야기 안하겠다. 새만금 그것 하나는 윤상직 장관 제안대로 하겠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모르지만 새만금은 확실히 하겠다. 그리고 영남 지방, 충청 지방, 수도권, 어제 코엑스 10만명이 모였다. 홍준표 대유세를 할 때 10만명이 모였다. 언론도 기울어져있고 여론조사기관은 전부 조작 한다. 나는 그것 안 믿는다. 우리 자체조사로는 두사람이 붙었다. 안은 다 빠졌다. 그래서 우리가 5월 5일 기점으로 이긴다. 전라북도에서 믿고 꼭 지지해주기 바란다. 감사하다.

 


2017. 5. 1.
자유한국당  공보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