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대표는 2018. 1. 17(수) 14:00, 광주시당·전북도당·전남도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준표 당대표>
원래 호남지역은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5천년 가난을 벗어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던 민주공화당 뿌리가 호남이었다. 그 이후에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영호남으로 갈라섰다. 우리당에 불모지가 된지 30년이 훨씬 지났다. 1% 지지가 있더라도 돌아올 때까지 저희 당이 호남에 대한 애정은 계속 할 것을 우리 호남지역 당원동지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린다. 마치 독립운동 하듯이 선거운동을 해야 하고, 정당활동을 해야 하는 호남지역 당원동지 여러분들께 언제나 저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제가 80년대 초에 1년 6개월 동안 전라북도 도민이었다. 아마 처음 듣는 분들 많으실 것이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서 1년 6개월 살았다. 전북도민이었다. 그 뒤에 90년 대 초에는 1년 4개월 동안 광주시민이었다. 광주지검 검사로 있으면서 북구 우산동 현대아파트에서 1년 4개월을 살았다. 제 아내는 전라북도 부안 여자다. 군산여상을 나와서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 근무를 했다. 안암동 지점에서 근무할 때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돈 찾으러 은행을 왔다 갔다 하다가 눈이 맞았다. 그때부터 연애를 했다. 그 연애를 안했으면 사법시험 일찍 붙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난 뒤에 결혼할 때 딱 42만원으로 결혼했다. 친가에 재산 없고 처가에 덕 안보고 그렇게 결혼하면서 봉천7동 지하 단칸 샛방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저는 오늘의 홍준표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아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리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것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내 인생은 내가 산다. 그리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사는 사람이다. 내 아내가 굉장히 무섭다. 40년을 엄처시하에서 산다. 검사할 때는 밤 11시까지 집에 오라고 한다. 11시 넘으면 문을 안 열어준다. 밖에서 검사들은 옛날에 술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어느 회식 석상에 가더라도 나는 밤 10시만 되면 이유불문하고 일어섰다. 집에 문을 안 열어주기 때문에, 엄처시하에 40년 산 바람에 스캔들 하나 없고 온갖 구설수가 있어도 여자문제 관한 스캔들은 단 하나도 없다. 그것은 엄처시하에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밖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내 집에서 내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 거기서 맛을 들이다보니까 밖에서 밥 먹고 가면 집에 가서 또 먹는다. 그래서 제가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처음 만난 것이 76년 10월 31일이니깐 얼굴안지가 40년이 넘었다. 그런데 40년 동안 나를 감시하고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반드시 바로 잡아주고 실수 안하게 하고 그렇게 해준 내 아내 덕분으로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 나를 보고 어떤 분이 비난을 하면서 마초 같다. 마초라는 것이 남성우월주의자고 여자를 깔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나는 상남자다. 내 가족 지키는데 어떤 희생도 하는 사람이다. 내 각시를 모욕하고 내 각시를 깔보고 내 가족을 깔보는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용서하지 않는다. 내가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판에 들어올 생각을 처음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광주지검에서 깡패수사를 하다가 잡아넣은 깡패가 굉장히 많다. 지금도 광주 에 가면 홍준표가 그 당시 전설이었다. 어떻게 잡아넣었는지, 검사 그만두고 나니깐 집에 협박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때 대부분 깡패들이 91년도 잡아넣은 깡패들이 93년 그리고 서울 올라와서 슬롯머신 수사하고 95년도 그만두니까 대부분 석방되어 나오는 시기였다. 납치하겠다, 부인 납치한다, 애들 납치한다, 그 바람에 가족 지키려고 정치판에 들어갔다. 검사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내가 내 가족이라도 지키려면 국회의원 하면 날 협박 못할 것이다. 사실 검사 그만두고 나면 아무런 힘이 없다. 변호사는 힘이 없다.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처음 시작할 때는 내 가족 지키려고 시작한 것이다. 날 믿고 사는 내 아내나 내 어린자식들이 깡패들이 협박을 당해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니깐 협박하는 것이 싹 없어 졌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근본적이 가치는 가정이다. 가정이 건전하고 가정이 튼튼해지고 그래야지 밖에 나가서 마음 놓고 일하고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다. 가정에 문제가 있고 가정을 불신하면 그 누구도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런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지만 처가 동네 왔기 때문에 내 아내 자랑을 하고 간다.
송하진 전북지사가 공부도 같이하고 내 대학 동기다. 예전 예산국회에서 송하진 지사가 와서 전북 잼버리예산 하는 법령 손대지 말아 달라해서, 내가 전북예산은 손대지 말라고 잼버리 예산 해줘라고 했다. 오늘 안 왔을텐데 부안군의 김종규 군수가 부안군 예산을 가져 왔길래 부총리를 불러서 이 예산 다 해줘라고 했다. 내가 부안군 예산 챙긴 지가 십몇 년 되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부안군 예산 챙겨준 지는 아마 재선 때부터 챙긴 것으로 기억하니까 20년 되었을 것이다. 부안군에서 오신 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부안군은 내가 한 십몇 년을 예산 챙기고 일을 도와줘도 내가 단 한 번도 생색낸 일이 없다. 내가 오늘 한 번 생색내고 간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전라북도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새만금이 개발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지금의 방식으로 개발을 한다면 50년이 지나도 개발이 되지 않는다. 지금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마지막 남은 개척지가 새만금이다. 지난번에 우리당의 산업부 장관 출신인 윤상직 의원이 홍콩 방식으로 새만금을 100만 도시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것이 있어가지고 우리가 추진해보려고 했는데 좀 유감스럽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새만금은 현재의 방식으로 매년 나라에서 찔끔찔끔 주는 예산 방식으로는 새만금을 개발할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를 두고 봐도 마지막 남은 4차 산업혁명 기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새만금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전라북도의 당원동지 여러분들이 새만금 문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번 접근해보는 것이 전라북도 전체가 일어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호남의 중심도시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저는 확신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새만금 문제는 저희당 차원에서 별도로 세우도록 오늘 약속하고 가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 한국 보수정당의 뿌리가 호남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을 회복하기 위해서 저희들이 호남민심이 알아줄 때까지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 드리고 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날이 오리라고 저는 확신한다. 여기서 더 이상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좋은 날이 올 것이고 전북에 새날이 밝아 올 때가 있을 것이다. 전부 희망을 갖고 저희들의 노력을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
<전북도당 김효성 당협위원장>
반갑다. 김제․부안 위원장 김효성이다. 2018년 무술의 해 홍준표 대표님을 모시고 신년인사회를 전통의 도시, 문화의 도시 전주에서 개최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2017년은 우리 자유한국당의 최악의 해였지만 무술년 2018년 해는 민심이 돌아선 자유한국당을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찾아오는 그런 해로 만들고 6.13 지방선거에서 기필코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겠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에게 아주 실망되는 그런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안보와 외교는 무너지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거나 가족끼리 장사를 하는 그런 형태로 변하고 있다. 또한 20년 만에 최악의 실업자를 만들고 있다. 우리 자유한국당은 2018년은 다시 민심이 돌아오는 해로 만들고 6.13 선거를 꼭 승리로 만들고 다음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호남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다짐을 하겠다. 멀리에서 오신 광주 여수에서 오신 당원동지 여러분 올해도 건강하고 자유한국당을 위하여 필승하자. 감사하다.
<광주시당 정윤 당협위원장>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 홍준표 대표님께서 이 먼 곳까지 우리 호남지방에 오셔서 우리 당원들에게 격려를 해주니까 너무나 힘이 난다. 우리가 항상 소외됐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이 자리가 영광의 자리인 것 같다.
작년도에 너무 슬펐죠? 격동의 한 해였다. 얼마나 마음 아팠는가. 하지만 2018년에는 조금 더 좋아질까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국민은 불안하다. 또한 격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안 속에서도 일부 정치인들은 그냥 자기네들이 잘 하는 것처럼 해나가고 있다. 올림픽 하나 가지고 이국을 불어들이면서 우리의 안보의식을 흩트려 놓고 있다. 저는 6.25때 우리 아버지가 총상을 당했다. 또한 제 큰 애는 육군 타 사단에서 전사했다.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불쌍했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비극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
안보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해야 하는데 왜 자유한국당만 안보를 찾고 있는가. 자유한국당의 대한민국인가. 자유한국당 아니면 여기는 외부사람인가.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 호남이 지금 현재 당 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 금방 대표님께서도 정말 고생한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들이나 우리는 다를 바가 없다. 우리 힘내고 다시 한 번 잘해보자.
<김상훈 여수시을 당협위원장>
반갑다. 여수시을 당협위원장 김상훈이다. 잠을 설쳤다. 여러분도 같은 심정일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뭐하러 거기 있나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서 국가관과 애국심을 알고 나왔다. 정치적 역사도 제가 공부를 했다. 그래서 제가 자존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분들 4~50년 우파 지켜줘서 감사하다. 여러분들의 대를 이어서 또 지키겠다. 대표님 말씀하셨듯이 호남에 약속 하셨고 희망을 금방 볼 것이라고 저도 믿고 있다. 대표님이 많은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제가 당부드리고 싶은 것 세 가지 정도만 말씀드리겠다.
오늘도 지금 전북도당에서 하고 있는데 다음번에는 반드시 전남, 광주시당이 있는 아래쪽으로 대표님이 내려와 주시길 부탁드린다. 제가 창피해서 못살겠다. 조금 전에 들으니 검사시절에 170여명을 구속시켰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저희 아파트에서도 홍준표 보기 싫어 죽겠다고 한다. 다음번에 오실 것으로 확신한다. 두 번째는 지금 현재 지내다보니 저는 2년 밖에 안 되었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정통파 우파였다. 이제 가짜 우파 좀 영입하지 말기 바란다. 이번에 공천하실 때 가짜우파 좀 배재하시길 부탁드린다. 제가 퇴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홍준표 대표님을 위해서 하는 드리는 말이다. 어디 가서 자꾸 힘이 없다 힘이 안나는 모양이다. 우리 힘나도록 우리 박수 한 번 부탁드린다. 연기과자를 오래 하셨는데 작년부터 끊으셨다고 한다. 올해는 한 대 정도 피우실 수 있게끔 우리가 지방선거에서 힘을 넣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이다. 감사하다.
2018. 1. 17.
자유한국당 공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