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2018. 12. 8(토) 15:00, 청년정치캠퍼스Q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제가 오늘 인사하러 온다고 하니까 보좌진들이 메세지를 적어줬다. 읽어보니까 좋은 말이 많은데 그거 말고 제 이야기를 좀 하겠다. 아까 제가 잠시 들어와서, 뒤에 있으면서 ‘내 청년시절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까 별로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까 뭘 하나 정해놓고 그냥 냅다 달렸는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청년시절이 그냥 지나가 버린 듯하다. ‘왜 그랬을까’ 이상한 질문을 제가 해봤는데 쉽게 말해서 굉장히 살기에 급했다. ‘내가 뭘 안하면 내가 세상에서 뭘 해서 내가 살아남을까’ 이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에 대한 고민보다 내가 여기서 낙오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겠다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여러분들 나이에. 아마 어릴 때 고생을 해서 그런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그냥 냅다 간 것이다. 내가 뭘 잘하는지를 생각해봤다. 보니까 축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축구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될 것도 아니고, 가만히 보니까 별로 신통치 않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를 해보니까 공부를 좀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공부를 좀 해보자’ 대학 2학년 어느 날, 대학 3학년 때이다. 정확하게. 만사 제쳐두고 그날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는데 요즘처럼 학원이 많을 때도 아니고 책이 많을 때도 아니다. 그리고 영어가 별로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꾸리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고, 그러다보니까 이것저것 손을 대서 마구잡이 달리다보니까 만29세에 미국 가서 학위를 하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만30세 되기 전에 대학 조교수가 됐다. 30세 되기 29세 11개월쯤 됐을 때. 그다음부터 보니까, 어느 날 눈떠보니까 내가 한 37세 됐을 때 벌써 대학의 정교수, 갈 때까지 다 갔다. 그리고 나이 40대 때에 대학의 교수협의회 회장, 대학원장, 그렇게 인생이 가버린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청년 때. 그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좀 할 수 없었을까. 아마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여러분들 오늘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기회를 못 가졌었다. 냅다 그냥 공부만 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분노한다고 그럴까 그것을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꼈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그게 오히려 대학교수 되고 난 다음이다. 교수가 돼가지고, 그다음에는 어느 날 돌아보니까, 물론 그 전에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가 조금 잘못됐다는 생각을 조금 더 하게 됐고 여유가 조금 더 생겼다. 결정적인 게 뭔가 하면, 4.13 호헌조치 있을 때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제 직선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호헌조치를 하고, 그 호헌조치를 듣는데 제 집이 사당동에 있었는데 사당동에서 학교까지 차를 운전하면서 학교로 출근하는데 출근 내내 그냥 울었다. 학교 도착하니까 눈이 부어서 도저히 내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 다 보는 앞에서. ‘아 이게 세상이 이래서 안 되는구나’ 그러다보니까 학교의 보직 그런 거 다 포기하고, 소위 학내민주화부터 시작해야겠다고 해서, 그러면서 이제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는데 아까 여러분들 발표하는 것을 보는데 부러웠다. 여러분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알았으면. 모르죠.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지금 제가 후회스러운 게 있는데 그런 게 없어졌을 것 같다. 여러분들 보니까 부럽다.
그리고 한마디 해드리고 싶은 것이 그러면서 생각해봤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꿨는가 생각해봤다. 많이 바꿨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매디슨이 그야말로 미국의 헌법을 기초할 때 그때의 나이가 얼마였는가. 나이가 30세 정도 됐을 때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데모크라시 인 아메리카라는 책을 썼을 때 나이가 28~9세 시작에서 책이 30대에 나왔으니까 28~9세 됐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들던 안 들던 명치유신을 일으켰던 다카스기 신사쿠의 나이를 찾아봤더니 역시 29~30세이다. 또 사카모토료마 28~9세이다. 그 시대에 벌써 세상을 바꾸겠다고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여러분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부러운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봤다.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들은 지금 민주당에 많이 들어가 있고 우리당에도 있지만, 80년대 젊은이들, 90년대 젊은이들 비교해봤는데 언뜻 생각이 뭔가 하면, 어쨌든 한때 우리사회의 어떤 젊은이들이 세상을 통째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았었다. 이제 여러분들도 그런 거 생각해볼 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생각이 통째로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굉장히 빠른 사회변화에 우리사회가 어딘가에 못 따라간다. 옛날 민주화시대 때의 그때와 또 다른 하나의 뭔가 지금 굉장히 답답한 것이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데 우리의 시스템이나 우리의 문화나 뭐가 지금 못 따라가고 있는 듯한 이런 양상이 지금 자꾸 전개되고 있다. 이거 바꿔줄 사람이 누군가 하면 우리 기성세대는 못 바꾼다. 우선 감각이 안 된다. 그리고 어떨 때는 뭐가 문제인지를 사실은 잘 모르겠다. 방금 제가 신보라 의원한테도 이야기 드렸지만 어떨 때 보면 젊은이들이 굉장히 화를 내는 말인데 우리세대는 ‘저 말에 왜 저렇게 화를 내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문화도 젊은 사람들한테는 대단히 부자연스럽고 마음에 안 드는 문화인데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이다. 굉장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만큼 세상도 뭔가가 지금 빠르게 변하는데 따라서 우리 문화도 못 따라가고, 우리 경제사회 체제도 못 따라가고, 우리 정치도 못 따라가고, 못 따라가는 게 굉장히 많을 것이다. 이거를 여러분들이 바꿔주셔야 한다.
그러니까 제 말씀이 뭔가 하면, 오늘 입법하는 것 배우면서 하나하나 쌓아갈 게 뭔가 하면, ‘세상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좀 더 다져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러분들 나이면 할 수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그 구조 위에 그냥 올라타려고 그러는 것보다 여러분들끼리 모여서 ‘뭔가 세상 한번, 이래서 되겠나.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이야기하면 여러분들 에너지가 모여질 것 같다. 아마 여기에 나와서 8주 동안, 하루 5시간씩, 아니면 온종일 공부하는 그런 열정이 있는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런 열정도 여러분들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모아보시라. 모아서 잘 모으면 틀림없이 우리사회의 중심세력이 될 것이다. 세월 지난 다음에 한번 보시라. 여러분들 시대 때 만난 사람,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나중에 세월 지나서 가서 보면 여러분들이 여기저기 다 있다. 너무 웃기는 이야기이다. 제가 아까 세상에 대해서 분노하기 시작한 게 늦게 떴지만 나름 뭔가 해보려고 버둥댔다. 버둥대면서 교수가 초임교수가 되고 난 다음에 그래도 세상 밖으로 나가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들이댔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있다. 우리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다 다르다. 나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도 있고, 같은 쪽에 있는 사람도 있고, 입장이 같은 사람 있고, 영 달라서 원수가 된 사람도 있고 다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때 젊었을 때 그런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다 있는 것이다. 너무 웃기는 게 한번 이런 일이 있다. 한번은 몇 사람이 모여서 ‘야 세상이 이래서 되겠느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번 우리끼리 그려보자. 몇 사람이 모여서’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잘 안됐다. 안되고 결국은 무산됐지만 ‘그래도 우리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이야기를 열심히 한번 해보자’ 이랬다. 그리고 많이 그렸다. 교육은 이렇게 바뀌어야 되고, 정치는 이렇게 바뀌어야 되고, 경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되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자 보시라. 한사람이 제일 먼저 어디로 들어가는가 하면, 우리끼리 이야기했던 몇 사람 중에 한사람이 어느 날 김영삼 대통령 들어서더니 ‘자기가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오라고 하는데 갈까 말까’ 해서 ‘가세요’ 그 분이 누군가 하면 박세일 교수이다. 그다음에 그때 우리 모임에 왔다 갔다 하던 사람 중에 한사람이 또 조금 있으니까 어디 가는가 하면, ‘난 청와대 수석으로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갈까 말까’ 그 사람이 DJ때 정책수석 했던 김태동 수석이다. 그다음에 우리 머리 맞대고 같이 이야기하던 사람이 있었다. 또 한사람이 있는데 그게 누군가 하면 이명박 정부 때 정책실장 했던 분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했다. 전부 젊었을 때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때 머리를 맞대고 같이 했던 사람이 인연이 깊다. 예를 들어서 박원순 시장하고도 결국은 우리 젊었을 때 사회운동 같이 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했던 사람들이다. 여러분들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죠. 틀림없이 여러분들이 나중에 가다보면 여기에 있든 저기에 있든 여러분들이, 나는 여러분들이 40시간정도 나와서 열심히 발표하고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들이 우리사회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번 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정말 세상을 갖다 ‘이 세상이 어디가 근본적으로 잘못됐고, 그다음에 내가 주체가 돼서 한 번 바꿔볼 수 없을까’ 용감한 생각을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말하자면, 더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가 있게 될 것이다. 미래세대에. 10년, 20년, 30년 지난 다음에 또 다른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 드린다. 한편으로는 대단히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 정말 격려하고 싶고, 그래서 제가 아까 이리저리 짧은 이야기이지만 드렸다. 사실은 몇 시간동안 계속 같이 밤새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언제 그럴 기회가 오겠죠. 오늘 짧게 이렇게 격려말씀 드린다. 또 축하말씀 드린다.
2018. 12. 8.
자유한국당 공보실